Someday And Everyday





마이애미의 작열하는 태양만큼이나 눈부신 포니테일 머리가 찰랑이고 있었다. 바닷가를 약간 빠른 템포의 발걸음으로 통통 뛰고 있는 여자아이의 드넓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흘러가는 풍경들속에서 슬로우 모션처럼 거슬러 가는 아이의 날렵한 다리는 빛나는 바다 표면 위를 가르는 한 마리 새 같기도 했다.

“칼리! 멀리 가면 안 된다!”

어렴풋이 주의사항이 들려온 것 같았지만 아이의 귀에는 그 소리가 와 닿지 않았다. 질끈 묶고 있었던 리본이 풀려 바람에 쓸려가고 풍성한 금발머리가 출렁, 내려와 목덜미를 때렸지만 소녀의 달리기는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바람이 되고 싶었다. 아버지를 피해 밖으로 도망쳐야 하는, 어머니의 초췌한 모습을 받아내야 하는 일상들을 피해서 자유롭게 나는 바람이 되고 싶었다. 그것은 충동적이었으며 가슴을 태우는 갈증같은 것이기도 했다.

“Wait-”

나직한 제지가 칼리를 멈춰 서게 했다. 겁에 질려 달려 나가는 어린 강아지를 다독거리는 부드러운 손길.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모래사장에 다리를 고정시켰을 때, 칼리는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고 가늘게 등줄기를 떨었다.

“저기 떨어진 리본. 네 것 아니야?”

소년은 손가락을 들어 칼리의 등 뒤를 가리켰다. 하지만 칼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중력을 잊고 달리던 몸이 무겁게 얹혀 지는 무게에 비틀거리고 있었다. 소년은 칼리를 향해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는 그 무게를 덜어 주려는 듯 부드럽게 등을 쓸어주었다.

“모래사장에서 뛰는 건 별로 좋지 않아. 쉽게 지치거든.... 땀 닦아.”

소년이 건네준 코발트블루의 손수건에서는 막 갈무리한 느낌이 났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런 걸 막 건네줘도 되는 건가. 칼리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소년이 막 허리를 굽혀 칼리의 리본을 주워들고 있었다. 그제서야 칼리는 소년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다. 바닷바람에 날리는 흰 셔츠와 베이지색의 바지 붉은 머리와 마이애미의 태양 아래에서도 흰 피부가 인상적이다. 자신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는 그의 얼굴은 칼리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였다. 그는 숨막히는 열기 속에서도 어딘가 서늘하며 넓은 눈을 지니고 있었다. 엷은 미소를 띈 그의 얼굴에 칼리는 마음속에 있던 경계심이 풀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땀을 다 닦고 손수건을 건네준뒤 리본을 받아든 켈리는 머리를 묶을 생각은 없었는지 그냥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넓은 바다 위로 요트가 몇 대 떠 있었다. 미끄러지듯 흰 점으로 사라지는 그것들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이 점차 푸르게 물들어갔다.

“마이애미에는 처음인가 보지?”

“그래요.”

“바다 좋아해?”

“......”

넓은것이라면 다 좋아요. 내가 달려 나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켈리는 생각과 반대로 고개를 저었다.

“그저 휴가를 와서 즐기고 있는 것뿐이에요.”

소년은 응답이 없었다. 그냥 백사장에 털썩 주저앉았을 뿐. 칼리는 소년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앉을래?”

입고 있었던 남방을 벗어 모래사장에 깔아주는 호의를 봐서라도 앉기로 할까. 칼리는 짧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그 위에 앉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칼리는 사실 가만히 있는 것을 싫어했다. 빈둥거리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난생 처음 보는 소년과 만나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칼리는 아버지가 소리 높여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까지 그곳에 멍하니 있었다.

“가야해요.”

“그래.”

칼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갔다. 자신의 등을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이 느껴졌다. 한번 스친 소녀에 대한 철없고도 뜨거운 사랑도, 호기심도 아니었다. 그저 돌아가는 길을 지켜보아 주는 친 오빠의 걱정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상한 사람이야. 칼리는 아버지의 손가락을 잡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칼리는 일부러 늦게 나갔다. 어제의 시간보다 한참이나 늦은 시간이었다. 분명 그는 없을 것이다. 원래 그렇다. 한번 스친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다. 또 온다고 약속을 해도 그것은 인사 치례일 뿐. 약속도 하지 않았잖아. 그는 없어. 마음과는 반대로 머리칼은 바쁘게 찰랑거렸다.

“앉을래?”

칼리는 우뚝 모래사장에 멈추어 섰다. 눈부신 바다를 배경으로 소년은 어제와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호의를 봐서 앉아줄게. 어제와 똑같이 칼리는 소년의 옆에 앉았다.

“바다 좋아해?”

“넓은것이라면 다 좋아요.”

“나도 넓은 게 좋아.”

칼리는 무릎을 세워 턱을 기댔다. 어제는 바람이 되기를 소망했다면 오늘은 이 모래사장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온 몸으로 파도를 맞아주고 싶었다. 무슨 이유에서 다른 무언가가 되기를 갈구할까. 나를 그렇게 버리고 싶은 것일까. 칼리는 약간 쌀쌀맞은 목소리로 소년을 불렀다.

“나 내일이 마지막일거에요.”

“그래.”

“내일은 나오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

칼리는 소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뭔가 말을 더 하고 싶었는데 마땅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 칼리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이번에는 소년 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어디서 살아?”

“루이지애나.”

대답한 칼리는 내 대답을 들었으니 그쪽도 대답해야 한다는 듯 빠안히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유쾌하게 웃고는 대답했다.

“난 마이애미 토박이야.”

“그렇게는 안보여요.”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칼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부드럽게 흰 눈이 예쁜 곡선을 그렸다. 그녀 특유의 높은 목소리가 경쾌하게 휘날렸다. 정말로 얼마 만에 이렇게 웃어보는 건지 모르겠다.

“하아..아하하하... 재미있잖아요.”

소년은 뭐가 웃기냐는 듯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칼리는 자리를 탁 털고 일어났다. 너무 웃어서 배가 땡긴다.

“가볼게요.”

칼리는 휙, 뒤돌아서서 달려나갔다. 오늘도 역시나 그 시선이다. 아버지가 멀리에 보였다. 칼리는 다시 돌아보았다. 소년이 칼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자상한 시선으로.










오늘은 확신이 있었다. 어제와 같은 불안감을 모두 날려버린 칼리는 숨을 몰아쉬며 달려오자마자 소년이 펼쳐놓은 옷 위에 털썩 앉았다. 3일째 보는 풍경이지만 칼리는 왠지 질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인사도 없었다. 그냥 둘은 서로가 옆에 있는 것을 인식했을 따름이고 그 뿐이었다. 칼리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앉자마자 그녀는 첫말 마음속에 품었던 말을 모두 쏟아내었다.

“바다. 좋아하느냐고 물었지요? 난 사실 넓은것이라면 다 좋아요. 내가 달려 나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나도 그런 곳이 좋아.”

“응. 그 말을 줄곧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바다를 바라보았다. 내가 머무르는 이 순간. 지나가지 않는 이상 현실은 영원. 칼리는 천천히 소년의 목을 끌어안았다. 바다내음이 머무른 머리칼은 부드러웠다.

“고마워요.”

활짝 웃는 칼리의 미소에 놀란 듯 소년은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이윽고 그도 부드러운 미소로 응답해 주었다. 칼리의 목소리가 높은 새소리 같이 경쾌하다면 그의 목소리는 천천히 밀려드는 파도와도 같은 목소리였다. 왠지 잘 어울리네. 그 생각과 동시에 칼리는 소년의 뺨에 짧게 키스하고는 탁탁탁- 달려나갔다. 비행기 시간이 머지 않았다. 아버지는 잠깐의 시간만을 허락했다. 영원은 지나갔으며 현실은 변화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변하지 않으리라.

“안녕! 이제 돌아가 봐야 해요!!”

“.....다시 올 거지?”

“......”

“너는 돌아올 거야. 넌 바다를 아는 새니까!”

칼리는 휙 뒤돌아서서 소년을 바라보았다. 양 손을 수줍게 등 뒤로 돌려 깍지끼고, 자신있는 미소를 지었다.

“응! 꼭 돌아올게요!!”

칼리는 약속했다. 그리고 달려나갔다.






칼리는 눈을 뜨고는 난장판이 된 실험실을 둘러보았다. 이런 좀 치워야겠는데. 짤막한 꿈으로 어지러워진 머릿속을 정리하듯 톡톡 이마를 두드리고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빗어내린다.

아주 옛날의 꿈을 꾼 것 같다. 그동안 왜 잊고 있었을까 의아한 기억.
결국 그 소년의 이름은 알지 못했지. 그 뒤로 마이애미를 찾아올 기회는 없었으니까.

“뭐, 언젠가는 만나게 되겠지.”

칼리는 길게 기지개를 켰다. 늘씬한 허리가 활처럼 휘어지면서 새로운 기운으로 충전된다. 뒤에서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돌아보는 칼리의 금빛 머리칼이 바다위로 부서지는 햇살마냥 출렁였다. 그곳에는 그녀의 상관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띄우고 서 있었다.

“칼리? 바쁘지 않다면 지금 나와 함께 가줄 수 있을까?”

“물론이지요. 반장님.”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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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만났을거에요 이 두사람. 만난적있을거라고 우기고 있는 블레입니다!!
모티브는 아주 예전에 간디바님 홈에서 본 그림으로 잡아두었는데
쓰는건 무척 오래 걸렸네요 ㅠ_ㅠ
그래도 어제 간디바님께 받은게 있기에 그 보답으로 열심히 완성시켜서
보여드립니다아아아아아아. 이제 마이애미 5시즌!!
제발 호반장님이랑 칼리 그만 힘들게 해요 제리씨 ㅠ_ㅠ


칼리양이 새같다는 생각은 저만 하나요. 전 그녀만 보면 흰 새가 떠올라서요.;;;